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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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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시겠어요?

작성자
: 오주은
작성일
: 2018.10.04
조회수
: 6479

[2018 자원봉사 이그나이트 V-Korea]

 

 

 

화목한 가정과 행복한 생활을 꿈꾸며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는데, 매 맞는 아내가 되어버렸어요

정든 고향과 가족을 두고 의지할 곳 없는 한국에 시집왔지만 남편은 상습적으로 저를 때렸죠.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갔더니 의료보험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뭘 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남편에게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것은 심한 구타였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한국에 온 것이 죄인가요?

착하기만한 남편이었는데...이제 혼자가 되었어요

부모님과 저를 한없이 사랑하던 착한 남편이 갑작스런 사고로 부모님을 잃게 된 후 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어요. 그 후 남편을 입을 닫고 방문을 잠근 채 살게 되었지요. 결국 증세가 심해진 남편은 어느날 훌쩍 집을 떠났습니다. 남편을 찾았지만 얼마 후 남편의 시신이 바다에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남은 하나뿐인 버팀목 같은 남편이 이렇게 떠났습니다.

 

이주여성도 아이를 낳은 평범한 한국 엄마입니다

낯선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이주여성들. 한국어 공부는 물론 익숙하지 않은 한국문화를 익히는 등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한국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족과 아이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속 이주여성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합니다.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수많은 이웃들의 편견 가득한 시선입니다.


 

소외된 이주여성을 보듬어준 유일한 사람

지금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국가지원도 많아졌고, 지역사회 내 다문화가정지원센터도 생기면서 이주여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15-16년전만 해도 여전히 다문화가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했고, 지원체계조차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낯선 땅에서 적응이 어려운 이주여성들을 친정엄마처럼 살뜰히 보살펴주신 분이 계십니다. 이주여성의 결혼식 피아노 반주 봉사를 하게 되면서 그 계기로 지금은 열명이 넘는 이주여성들을 딸처럼 챙기고 계신 자원봉사자 김지태님.

매 맞던 이주여성을 폭력에서 벗어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주던 때, 혼인신고가 안 되어 불법체류자로 쫓겨날 뻔했을 때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순간 등. 그런 순간순간마다 김지태 봉사자는 이주여성들들에게 친정엄마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그 때부터 16년이 지난 지금도 김지태 봉사자는 많은 이주여성들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을 앞장서고 있다고 합니다. 김지태 봉사자분이 소속된 연제구자원봉사센터에서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 없던 시절부터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의 영역에서 결혼이주 여성들과 가정을 보살펴왔습니다.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문화적 차이 극복을 위한 활동은 물론 언어와 문자가 달라 높아만 보인 관공서의 문턱도 김지태 선생님과 같은 자원봉사자분이 계셨기에 넘을 수 있었죠.

김지태 선생님이 이주 여성들을 위해 하고자 하는 일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한국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맛볼 수 있도록, 경주로 아름다운 여행도 떠나고 싶고요.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이주 여성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행정업무를 위해, 각 행정기관에 영어, 중국어, 일어, 베트남어, 캄보디아어로 된 안내문도 제작하여 부착하고 싶다고 합니다.

김지태 선생님과 이주 여성들의 앞으로의 발걸음에는, 여러분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들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거두고 마음을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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